2016. 8. 1. 05:10


이번 회는, 「플라워 아티스트」로서 활약하는 마에다 유키 씨와의 대담입니다. 

이전에 그녀가 축하의 꽃을 만들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생화 하나 하나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어, 그녀의 모습이 투영된 플라워 어레인지에 압도된 것입니다. 생명이 담긴 꽃은, 축하와 애도 같은 바로 그 「순간」를 꾸미고, 화려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나운서에서 변신하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의 경력은, 그녀 자신의 「순간」의 충실함을 하나 하나의 꽃들이 웅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마에다 씨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있는 축구계, 스포츠계에도 용기를 주는 것이 었습니다.


타마노 쥰


타마쥰부 제 1회 기획이 되는 이번 회는, 플라워 아티스트의 마에다 유키 씨에게, 게이오 대학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이하 "SFC") 아나운스국 대표 마스다 모모카, 부대표 클로르 마이가 인터뷰했습니다. 

마에다 씨도 같은 게이오 SFC 출신이라는 점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시절 이야기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축구와의 관계, 그리고 현재의 플라워 아티스트의 일에 대한 생각 등, 많은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움을 추구했던 대학 시절 


클로르 : 대학에서는 어떤 것을 배웠었나요? 

마에다 : 우선 저는 스포츠를 무척 좋아해서 대학 라크로스 부에 들었어요. 그래서 그 연습이 대학 생활 중심 었지요. SFC의 추억이라고 하면 인도네시아어 일까요. 지금도 인도네시아어 수업 있나요? 

마스다 : 네, 있습니다! 

마에다 : 아- 다행이다(웃음). 주위 사람들이 영어 라든지 중국어 라든지, 비지니스에 사용할 언어를 전공하는 가운데, 처음엔 인도네시아어 라는 것이 조금 마이너한 것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 번 선생님을 만나 보니, 인도네시아어 소리의 울림이 굉장히 좋아하게 되어 버려서, 그래서 계속 전공 하게됐어요. 

마스다 : 지금 (인도네시아어로) 자기 소개는 하실 수 있나요?(웃음) 

마에다 : 아니, 지금은 잊어버렸는데요(웃음), 당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도 인도네시아 요리 가게에서 하고 있었어요. 종업원이 인도네시아 분으로, 함께 이야기 하면서 공부하고 일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음식의 이름은 굉장히 잘 기억하고 있어요, 나시고랭, 아얌고랭 라든가. 인도네시아 말하고 기억하는게 무척 간단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인도네시아는 정말 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공통어인 인도네시아어는 알기 쉽게 하자는 것이 테마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인인 저에게도 무척 기억하기 쉬웠고, 음식의 이야기 등을 하면서 점점 기억해갔어요. 

클로르 : 라크로스 부에 들어간 것은 원래 라크로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마에다 : 원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무척 좋아했고, 스포츠 전반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도 새로운 학교에 가고 싶었고, 라크로스도 대학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들어서 라크로스 부에 들어갔습니다.



축구와 함께 성장한 10 년 


마스다 : 「야벳치 FC」에 10년간 출연하셨는데요, 원래 축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마에다 : 맞아요, 사실 축구에 대해 전혀 몰라서(웃음). 스포츠는 좋아 했는데요, 처음에는 J 리그 팀에 무엇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축구 방송을 담당하게 되고, 열심히 공부 했지요. 

마스다 :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마에다 : 선수 명감을 항상 들고 다니면서, 출퇴근 시간에 계속 읽고 있었어요. 스포츠 신문을 몇 종류 사서 매일 읽기도 해서, 정말 축구에 푹 빠져 살았어요. 

마스다 : 하지만 원래 스포츠를 좋아했으면,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나요? 

마에다 : 그렇죠, 확실히 기억하는건 빨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공부도 중요한데요, 현장에 가는게 정말정말 중요합니다. 가급적 여러 팀의 경기를 많이 보러 간다거나, 또 연습을 보러 가거나, 뭐든지 하고 있었어요. 

클로르 : 10년간 축구에 관련된 것으로, 달라진 것은 있습니까? 

마에다 :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만, 한 가지를 말하자면, 음 뭐랄까. 하지만 자신의 아나운서 시대의 큰 기둥이 축구의 일 이었어요. 팀도 모르고 규칙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여 축구 경기를 보고, 선수 분이나 서포터 분들 등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도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축구를 통해 사회인이 되었다는 느낌이군요. 



꽃의 가능성을 추구하고자 


마스다 : 왜 테레비아사히을 그만둘 생각을 하셨나요? 

마에다 : 굉장히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인데요, 테레비아사히에서의 10년은 굉장히 즐거운 10년 이었어요. 하지만 취재를 통해 꿈을 향해 노력하고 계시는 선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의 어딘가에서 「자신이 정말하고 싶은 일이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은 무척 즐겁고, 회사분들도 좋은 사람들뿐만이라, 좋은 환경에 둘러싸였지만 자신에게 정말로 어울리는지 라든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일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이 떠오르니까 더 이상 생각이 멈추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정말 지금 좋은 환경에 둘러싸였지만, 어쩌면 좀 더 찾아보면 내가 이것보다 더 좋아하게 될 것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식물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 했어요, 어릴 때부터 꽃을 무척 좋아해서 식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조금 내딛어 볼까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 네요. 

클로르 : 플라워 아티스트로 유의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마에다 : 저, 꽃의 생산자 분을 둘러 보는 것이 너무 좋아해서 쉬는 날에는 농가에 직접 만나러 가서 이야기도 나누곤 해요. 예를 들면 장미가 어떻게 길러지고 있는지, 꽃과 어떻게 접하는지 라든가 다양한데요. 그래서 알려진 생산자 분의 생각을 고객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아프리카의 꽃을 고객에게 소개하는 일이 많아, 어패럴 브랜드에 노벨티로서 케냐의 장미를 가젹 가기도 해요. 그리고 쿠마모토에서 지진이 있은 후에, 쿠마모토의 꽃을 사와서 그 꽃을 팔아 얻은 수익을 모금하는 활동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쿠마모토에 좋은 생산자 분이 많이 계셔, 도쿄도 많은 쿠마모토의 꽃이 들어와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반적으로 퍼지진 않았잖아요? 이번 지진 재해 지원 활동은, 평소 꽃을 사지 않던 분이 쿠마모토의 꽃을 사러 와주셨어요. 그래서 먼 지역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가 꽃 일까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 꽃을 통해 할 수 있는건 정말로 많구나 하고 저 자신이 굉장히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꽃을 그냥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꽃이 가지고있는 가능성을 앞으로 여러가지 생각해서 추구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힌트는 좋아하는 것 중에 있다 


클로르 :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마에다 : 꽃의 일을 시작해 곧 3년이 됩니다만, 지금 매일이 무척 즐겁네요. 꽃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를 알게되어, 자신이 몰랐던 것도 시장의 사람이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꽃집 친구도 많이 생겨서, 그 사람들에서 굉장히 자극을 받아요. 그래서 이제는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과, 지금까지 아나운서를 하면서 「전하는」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꽃의 세계를 좀더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스다 : 마지막으로 학생인 저희들에게 뭔가 조언을 주실 수 있습니까? 

마에다 : 아직 뭔가 해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잘난 듯이 말할 순 없지만(웃음), 그래도 역시 좋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저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할 수 있고, 점점 더 하고 싶어지고, 하면서 정말 즐거워요. 

그래서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열중 할 수 있는 것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하고 미래의 길을 결정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을 마치고 


마스다 모모카 

「세컨드 커리어로 나아가는 큰 결단을 하시고, 생기 넘치게 좋아하는 것이 일로 하고 있는 모습에 여성으로서 대학의 선배로서도 동경이 강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멋진 미소에 넋을 잃어 버렸습니다!」

클로르 마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이던 꽃의 일을 실현한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제 미래의 목표를 ​​향해 여러가지에 도전하며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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